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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시나가르로 향하는 마지막 여정

기사승인 2019.11.18  00: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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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반열반경』은 석가모니의 입멸 과정과 그 과정에서 행한 석가의 가르침을 상세히 전하는 경전이다. 『열반경』이라고도 한다. 이 경전에 의하면, 석가모니는 입멸하기 석 달 전 이미 자신의 입적을 예견하고 제자들과 함께 라자가하(왕사성)를 떠나 쿠시나가르로 향하는 마지막 여정을 행한다. 석가는 자신의 입적지로 쿠시나가르를 선택한 것이다. 쿠시나가르에는 석가의 입멸지에 지은 열반당이 있고, 또 석가의 다비(茶毘)장에 세운 라마브하르 스투파가 있다.

 오늘날 쿠시나가르는 좀 외진 곳이다. 나는 쿠시나가르에서 50km 남짓 떨어진 고락푸르에 숙소를 잡았다. 고락푸르는 쿠시나가르로 가는 징검다리 같은 곳이기도 하지만, 네팔 국경으로 향하는 길목이기도하다. 쿠시나가르에서 석가 입멸의 유적을 보고, 국경을 넘어 네팔로 향할 예정이다. 소나울리로 가서 국경을 넘어 석가의 탄생지인 룸비니로 가려고 한다. 그러니 쿠시나가르는 내게 인도에서의 마지막 여정이 되는 셈이다.

 아침에 일어나 버스를 타고 고락푸르를 벗어나 쿠시나가르에 도착했다. 석가의 입멸지임을 알리듯, 시의 입구에서 커다란 불상이 너그러운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열반당과 라마브하르 스투파로 향하여 난 큰길을 따라 좌우 길가에 여러 불교 사원들이 조성되어 있다. 우리나라와 일본을 비롯한 미얀마, 태국, 베트남, 티베트 등 아시아 각국에서 불교 사원을 세웠다. 관광객들에게 이 절들이 때로는 식당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숙소가 되기도 한다.

▲라마브하르 스투파-왼쪽에 한 승려가 좌선을 하고, 가운데 여러 선남선녀들이 탑돌이를 하고 있다.

 여러 절들을 구경하면서 한 시간 남짓 걸어가니 어느 새 열반당에 도달했다. 열반당은, 넓은 벌판에 지어진 소박한 인도식 절이다. 그 앞 정문 진입로 끝에는 사라나무 한 쌍이 서있고, 그 뒤에는 커다란 사리탑이 조성되어 있으며, 그 안에는 6m쯤 되는 석가의 와상(臥像)이 있다. 이곳의 참배객이 장사진을 이룬다고 들었는데, 내가 갔을 때는 비교적 한적해서 마음이 더욱 한가로웠다.

 석가는 병(이질)으로 돌아가셨다. 석가는 쿠시나가르로 향하던 중 파바 마을의 망고 동산에 머물게 된다. 동산의 주인인 대장장이 춘다가 석가에게 정성껏 공양(식사)을 바친다. 스카라 맛다바였다. 후에 사람들은, 그것을 버섯 요리라고도 하고, 멧돼지 요리라고도 하며, 멧돼지를 넣은 버섯 요리라고도 한다. 석가는 그것을 먹고 병에 걸리고 만다. 석가는 이를 미리 알고, 다른 이에게는 이 음식을 주지 말라고 일렀다.

 춘다가 스스로 괴로워하거나 남에게 비난 받을 것을 염려하여, 석가는 아난다에게 당부한다. “그대 춘다여! 조금도 후회할 것 없소. 여래께서 당신이 올린 최후의 공양을 드신 뒤 입멸하셨다는 것은 당신께서는 참으로 경사스럽고 좋은 일이오.”라고 춘다에게 전하라고……. 석가는, 춘다 때문에 돌아가신 게 아니라 춘다가 준비한 최후의 만찬을 드시고 가셨다는 것이다.

 석가는 아픈 몸을 이끌고 쿠시나가르에 이르러, 한 쌍의 사라나무 사이에 “오른쪽 허리를 아래로 하시고 발을 겹치고, 사자가 눕는 듯한 모습으로 바르게 사념하시고 바르게 의식을 보전하시어 누우셨다”고 한다. 그때 이 나무들이 이른 시기에 갑자기 꽃을 피웠다고 한다. 온갖 종류의 향목(香木)을 쌓아 올려 석가의 유해를 안치하고, 불을 붙이려 했으나 불이 붙지 않았다.

 늦게 도착하여 석가의 입멸을 보지 못한 마하 가섭(염화미소의 주인공)이 옷을 왼쪽 어깨에 걸치고 합장하고 화장 나무 주위를 오른쪽으로 세 번 돌고 석가의 머리에 경배하자 향목에 저절로 불이 피어나 타올랐다고 한다. 석가의 유해는 재나 그을음도 남기지 않은 채 완전히 타서 유골만 남았다고 한다. 석가의 사리는 여덟 나라에 분배되어 사리탑에 모셔졌다고 한다. 사리들은 동아시아에까지 전해서 우리나라에도 다섯 적멸보궁(석가의 사리를 모신 곳)이 있다.

▲열반당(가운데)과 사탑(오른쪽) 그리고 사라 쌍수(왼쪽)

 열반당에서 30분쯤 가니 라마브하르 스투파가 있었다. 길목에 한국 절 대한사가 있었다. 라마브하르 스투파 벽돌로 만든 거대한 무덤 같았다. 스투파는 우리말로 탑이며, 탑은 석가의 사리를 안치한 곳이니, 스투파는 곧 석가의 무덤인 셈이다. 이 유적들을 보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선남선녀들이 모여든다. 그중에는 불교 신도도 있을 것이고, 이교도도 있을 것이고, 나같이 종교를 받아들이지 않은 이도 있을 것이다. 모두 한결같이 석가에게 외경의 마음을 보내니, 그가 인류의 큰 스승임에는 틀림없는 모양이다.

 평소 생로‘병’사(生老病死)를 피해, ‘생로사(生老死)’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알면서 병을 얻어 가셨다니, 석가도 인간 생로‘병(病)’사의 운명을 벗어날 수는 없었던가? 스스로 운명을 수락하신 것일까? 석가는, “만들어진 것은 모두 변해 가는 것이니라. 게으름 피우지 말고 열심히 정진하여 너희들의 수행을 완성하여라.”는 유언을 남겼다. 하기는 그렇다. 만들어진 모든 것은 변해가거늘, 열반당을 지은들 스투파를 쌓은들 거기에서 무슨 석가의 흔적을 볼 것인가? 그 여운이나마 느껴 볼 수 있을까? 스스로를 의지처 삼아 오로지 자신의 두발로 서 있을 뿐이거늘…….

이승준 인문자연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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