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항공대학교 신문기자 학형들!

 

또다시 새 학기가 시작되었네요. 서녘 멀리서 불어오는 하늬바람이 완연한 봄기운을 자아냅니다. 올겨울은 유난히 춥더니, 기다리지 않아도 봄은 오는군요.

 

한국항공대학교신문전각(篆刻) 도장 하나 새겨 보냅니다. 본래 전각이란 전서체(篆書體) 한자로 도장을 새기는 것을 말하는데, 이제는 나무, , , , 옥 등에 인장(印章) 새기는 것을 모두 아울러 이르는 말이 되었어요. 이름이나 호는 물론이고 의미 있는 문구나 그림 기호도 좋아요.

이번 전각은 한글로 새겼어요. 한자는 그림 글자에 가까운 상형문자를 기반으로 하고, 오랜 역사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어 어떻게 새겨도 제법 고풍스러운 맛이 있습니다. 한글도 다채로운 역사적 과정을 거쳤고 단순성의 아름다움이 있으나 좀 색다른 멋을 내려면 독특한 디자인이 필요하지요. 어떤 것이 좋다고는 할 수 없고 모두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년부터 슬슬 그림도 그리고 글씨도 써 봅니다. 어려서부터 그림과 글씨를 흠모하여, 늘 마음속으로 붓질해 왔고, 틈틈이 연습도 했지요. 그런데 이제 더욱 관심을 기울여 그림과 글씨를 좀 본격적으로 하자니 낙관(落款)을 찍을 인장이 필요하네요. 그림이나 글씨 한켠에 찍는 도장 있잖아요. 서양식으로 말하면 사인(sign)이지요. 전각을 직접 새겨 낙관을 찍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어졌어요.

사실은 옛날 선비들 서화를 하는 분들 중에는 직접 전각을 하는 분도 많았어요. 북송(北宋)의 서예가 미불에서부터 청()의 등석여, 오창석에 이르기까지 많은 분들이 그랬고, 우리나라의 추사 김정희나 다산 정약용 같은 분들도 그랬지요. 심지어 미불은, 서예가가 손수 새긴 전각 낙관이 없으면 완성작이라 볼 수 없다고까지 여겼다고 합니다.

날카로운 전각도를 들고 돌에 글씨를 새기다 보면 어느덧 온통 정신이 빠져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잊을 때가 있어요. 두세 시간이 훌쩍 가고 어떤 때는 일곱 여덟 시간을 밥 먹는 것도 잊은 채 새기기도 하지요. 무아지경(無我之境), 물심일여(物心一如)라 할까요. 그러다 보면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좀 복잡한 부분에 몰두하면 전체를 고려하지 못해 글자의 획을 빠트리거나 다른 획이 들어가기도 하지요. 글씨를 좌우 역상(逆像)으로 새겨야 하는데 바로 새기기도 하지요.

장 자크 아노가 감독을 맡고 브레드 피트가 주연한 영화 티베트에서의 7을 보면 흥미로운 장면이 나옵니다. 티벳 승려들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다채로운 색의 모레를 정교하게 흘려 섬세한 만다라를 만듭니다. 한데 완성되자마자 그걸 손으로 쓰윽 밀어 흩트려버립니다. 우리네 인생이 부질없다는 뜻일까요? 아니면 순간 순간의 과정 그 자체가 의미 있다는 의미일까요?

그러고 보면 시간의 힘 아래서 삼라만상이 변하고 스러지지 않는 게 없지요. 어찌 보면 권력이나 부와 명예는 물론 학문과 예술도 저 우주의 변화 속에서는 무의미한지도 모르지요. 그러니 돌에 새겨 남기려는 나의 행위는, 다시 굴러떨어질 것을 뻔히 알면서 부질없이 돌을 굴려 산꼭대기까지 올리는 시지프스 같군요. 허나 다시 생각해 보면 찰나가 영원이고 불멸이지요. , 지나친 의미 부여인가요?

 

 

도장을 찍으면 붉은 글씨로 찍히지요. 주문(朱文)으로 새겨서 그래요. 현대식으로는 양각(陽刻)이라 하지요. 글씨가 흰색으로 찍히게 새기는 방법은 백문(白文)이라 하는데, 말하자면 음각(陰刻)이에요. 백문에 비해 주문은 새기는 데 시간도 오래 걸리고 정성도 더 들지만 꼭 주문(朱文)이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한자는 백문으로 한글은 주문으로 새기는 것이 상례지만 반드시 그래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전각을 하다 보면 한문 글자체 공부는 기본인데, 그 또한 재미가 쏠쏠합니다. 얼마 전 중국 후한 때 학자 허신(許愼)이 지은 설문해자(說文解字)가 완역되어 거금을 주고 샀어요. 당대와 그 이전의 한자 금석문 등을 모아 그 모양과 의미 그리고 발음 등을 해설한 책이에요. 최초의 한자 자전(字典)이라고 할 수 있지요. 전각에 큰 도움을 주는 책이에요.

글씨와 전각은 짝을 이루기에 전각을 철필(鐵筆)이라고들 하지요. 금석학(金石學)도 한 궤에 놓이고요. 금석학은 오래된 비석 같은 데에 새겨진 문자를 연구하는 학문이에요. 역사적 고증을 위한 탐구이기도 하지만 글자체에 대한 연구이기도 합니다. 이 모든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이른 분이 추사 김정희 선생이지요.

아직 부끄러운 실력입니다. 아마도 앞으로도 그럴 테지요. 전각도를 들고 새로 전각을 새길 때마다 지난번에 새긴 게 몹시 서툴러 보여요. 때로는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집니다. 그래도 재미있어서 합니다. 그만큼 안목과 기술이 늘었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한국항공대학교가 명실상부 대한민국 항공 교육을 대표하는, 아니 세계 으뜸의 항공 특성화 대학교가 되길 기원합니다. 더불어 항공대신문이 더욱 건강한 대학언론으로 거듭나기를 바랍니다. 이번에 보내는 인장이 그런 의미 있는 선물이 되면 좋겠습니다.

 

보내기 싫어도 봄은 가겠지요.

건강하게 잘 지내요.

2023 개강 직후

이 승 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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