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8일 민중을 이끄는 자유, 들라크루아
7월 28일 민중을 이끄는 자유, 들라크루아

 

궂은 비 내리던 날…….”,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의 가사 서두다. 낭만(浪漫)은 라틴어 ‘Roman’의 한자 표기다. 요즈음 젊은이들이 로망이라고 하는 말이 바로 낭만이다. 한자 낭만은 감정이 넘쳐흐른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될 듯하다. 낭만은 삶에 활력을 주는 중용한 요소이기도 하지만, 지나치면 감상(感傷)에 빠져 이유 없이 우울한 태도를 자아낼 수도 있다.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는 명곡이다. 허나 비 오는 날 술이라도 한잔 마시고 들으면 우울에 빠지기 일쑤다.

베토벤을 서양 근대음악의 성인이라 일컫는다. 고전주의 음악을 완성하고 낭만주의 음악을 열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들어봐도 베토벤 후기 음악에 낭만적인 요소는 찾기 어렵다. 베토벤 교향곡 9번도 그렇고, 후기 피아노 소나타도 그렇다. 특히 그가 만년에 심혈을 기울인 후기 현악 4중주곡들도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 그것들은 도리어 낭만주의 음악을 훌쩍 넘어서 현대음악을 예시하고 있다. 교향곡 6전원이나 몇몇 소품들에서 낭만적 분위기를 찾을 수 있다. 사실 낭만성이란 동서고금 언제 어디나 있었던 것이니 당연한 일이다.

서양 낭만주의란 예술 작품에서 낭만적 감정이 강력하게 분출된 시기를 일컫는 것이다. 슈베르트는 서양 낭만주의 음악의 정수(精髓). 그는 16세에 작곡을 시작해서 죽을 때까지 천곡 가까운 작품을 남겼는데, 그의 모든 음악에 낭만적 정서가 흘러넘친다. 부족하지도 않고 과하지도 않다. 놀라운 것은 31년이라는 짧은 생애를 살면서 그런 음악적 업적을 남겼다는 사실이다. 흔히 요절한 천재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모차르트는 35세까지 살았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슈베르트가 베토벤이 타계한 이듬해 저세상으로 갔다는 것이다. 베토벤이 57세에 타계했는데, 슈베르트를 기준으로 보면 그는 베토벤과 동시대를 산 것이다. 슈베르트는 베토벤을 너무나 존경해 죽어서도 베토벤 곁에 묻혔다. 헌데 그의 음악은 베토벤과 판이한 길로 향했다. 그는 베토벤을 존경했지만 온전히 자기 세계를 구축했다. 바로 그것이 서양 낭만주의 음악이다.

낭만주의 혹은 낭만성을 규정하기는 쉽지 않다. 그 핵심을 짚어보자면, ‘동경(憧憬)’이라는 단어에 집약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동경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간절히 그리워하는 것이다. 과거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 미래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 현재 대한 것일 수도 있다. 또 그저 막연한 것, 내가 알지 못하는 것, 어느 먼 곳에 대한 그리움일 수도 있다. 인간은 때때로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해 비극적 분위기에 휩싸이기도 한다. 사실 대체로 현실은 고달프다. 그럴 때 삶에 활력을 주는 것이 바로 낭만적 감정이다. 때로 그것은 현실로 화하기도 하지만 그런 일은 대체로 드물다. 낭만주의가 지나간 자리에 사실주의가 들어서는 이유다.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들라크루아는 이성과 질서를 거부하고 광기에 매혹되었다. 서구의 고전적 미학에서 벗어나 그리스에서 터키로 동방의 아름다움에 심취했다. 그리고 그의 상상력은 아프리카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면서 서양 회화의 문법을 새로이 세웠다. 그의 그림에는 열정과 힘이 넘친다. 지금 우리의, 말하자면 현대적인 정신이 여기에서 싹텄다. 그것은 자유의 정신이다. 그것은 가히 혁명적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그것은 정신적으로만 혁명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로도 혁명적이었다. ‘728일 민중을 이끄는 자유에서 보듯이 그것은 실제로 혁명을 부추겼다. 오늘날 이 그림은 프랑스 혁명의 상징이 되었다.

사실 세계 근대사의 대사건인 프랑스 대혁명과 그 이후 벌어진 세계 혁명의 물결의 바탕에 깔린 힘이 다름 아닌 바로 이 낭만적 정신이다. 어찌 보면 모든 변혁이나 혁명과 같은 세계사적 사건은 이성적 태도나 조직적 기획이 아니라 그 막연한 동경을 향한 감정의 분출에 의해 결정되는 것 같기도 하다. 현실적 부조리에 대한 거부와 미래에 대한 막연한 희망으로 인하여 거대한 역사의 물길은 의외의 지점에서 터져 뜻밖의 길로 넘쳐 흐른다. 그것을 이끄는 힘은 대체로 낭만의 힘이다. 그런데 사후에 그러한 사건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또한 필연적 이유가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것을 해석하는 것은 역사가들의 몫이다.

예술이든 역사든 혹은 개인적 삶이든 어쨌든 낭만이란 매우 중요한 인간의 감정이요 태도다. 팍팍한 현실을 사는 젊은 대학생들이 로망을 이야기하는 것이 사치처럼 보이는 시대다. 얼마 전 초등학생들에게 꿈이 뭐냐고 물으니, 7급 공무원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아마도 공무원이 알찬 직업이라는 것을 알았을 텐데, 9급 공무원은 좀 시시해 보이고 5급 공무원이 되는 것은 어렵게 보였던 모양이다. 사실 9급 공무원도 훌륭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등학교 학생들의 꿈 치고는 너무 현실적이다. 이 시대가 서럽기도 하다. 동경(憧憬), 그것을 다른 말로 바꾸면 꿈이나 이상이다. 그것이 지나치면 삶은 허무맹랑해지겠지만, 전혀 없으면 산 죽음이나 매한가지다. 꿈을 잃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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