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반정부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피살

  사우디아라비아의 저명한 반정부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터키에서 실종되었고, 이후 살해된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달 2일, 카슈끄지는 결혼에 필요한 서류 준비를 위해 터키 이스탄불의 사우디 총영사관에 들어간 이후 나오는 모습이 확인되지 않아 실종된 상태였다. 터키는 살해 배후로 사우디의 빈 살만 왕세자를 지목했다. 터키와 사우디의 진실공방에서 사우디에 불리한 입장이 나옴에 따라, 사우디의 오랜 우방인 미국 또한 등을 돌리면서 중동의 정세가 변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벼랑에 몰린 살인정권


  터키 검찰에 따르면 9월 28일, 카슈끄지는 약혼녀와의 재혼을 앞두고 이혼 서류를 발급받기 위해 주 이스탄불 사우디 영사관을 찾았다. 영사관 측은 서류 준비 시간을 이유로 방문 시간을 10월 2일로 미루었고, 그동안 사우디 본국에서는 카슈끄지를 살해할 암살단이 세 차례에 나누어 급파되었다. 사건 당일 카슈끄지는 영사관을 방문한지 불과 7분 만에 고문과 폭행 끝에 목 졸라 살해당했다. 이후 토막 난 그의 시신의 처리를 위해 근처에서 바비큐파티를 하는 등 치밀한 계획에 따라 카슈끄지는 살해되었다.

  사우디 왕실 측은 처음엔 카슈끄지는 살아있으며, 영사관을 나갔다고 주장했다. 또한 숨길 것이 없으며 언제든지 영사관 안을 수색해도 좋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터키측 조사결과에서 구체적인 살해 정황이 담긴 녹취록 등 불리한 증거가 하나둘 나옴에 따라, 결국 10월 19일, 사우디 아델 알 주베이어 외무장관은 요원들과의 주먹다툼 끝에 카슈끄지가 살해되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이는 요원들이 지시를 잘못 이해했거나 월권행위를 저지른 것이며, 빈 살만 왕세자 등 왕족이 살해를 지시했다는 주장은 부인했다.

  이에 대해 터키는 카슈끄지 피살사건은 사우디 왕실의 지시에 따른 살인이라며 사우디에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터키 에르도안 대통령은 “미리 치밀하게 계획된 정치적인 살인”이라며 사우디 정부를 규탄했다. 그러나 사우디와의 우방관계를 의식했는지, 지난 3일 워싱턴포스트에 게재한 기고문에서 “살만 사우디 국왕이 카슈끄지 살해명령을 내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지시는 사우디 정부 최고위층으로부터 왔다.”고 밝히며, 사실상 실권자인 빈 살만 왕세자가 배후라는 뜻을 피력한 것으로 보인다.


의문의 죽음, 21세기 피의숙청


  사실 카슈끄지와 같은 사우디 반정부, 반체제 인사들의 의문의 죽음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빈 살만 왕세자의 ‘2030 경제비전’에 강력히 반대해왔던 판사 술레이만 압둘 라만 알-투니얀은 건강검진차 병원을 찾았다가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사망했다. 전 왕세자 아들인 만수르 빈 무크린 왕자 또한 개인 헬리콥터로 사우디 탈출을 시도하다 의문의 추락사고로 사망했다. 이 모든 의문의 죽음의 배후 인물로 전 세계는 대규모 숙청을 진행중인 빈 살만 왕세자를 지목하고 있다.

  카슈끄지의 죽음 또한 사우디 왕실의 눈 밖에 났기 때문이라는 것이 유력하다. 카슈끄지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개혁 성향 일간지의 편집국장을 지내면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을 비판하고 사회 개혁을 요구하는 글을 집필해왔다. 결정적으로 아랍의 봄 당시 민중의 혁명을 지지하면서 사우디 왕실의 분노를 산 데에 이어, 신변 안전을 위해 미국에 머무르며 사우디 정부, 특히 사우디의 실권자인 빈 살만 왕세자의 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써왔다. 또한 반체제 인사에 대한 금전적 지원 및 ‘아랍세계의 민주주의‘ 정당 설립 등 왕실의 눈엣가시가 되었던 카슈끄지는 결국 살해당하고 말았다.
  이러한 탄압의 배경에는 빈 살만 왕세자의 숙청이 있다. 무하마드 빈 살만 왕세자, 일명 MBS의 대규모 숙청은 부패 일소를 이유로 정치, 종교, 기업인을 가리지 않고 사우디 내 광범위한 지도급 인사들을 체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숙청은 자신과 자신의 측근의 부패는 용인하고 있다는 점과, 정부에 대한 비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단순히 권력을 위한 숙청이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또한 카슈끄지 사건과 같은 도를 넘은 탄압은 세계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


화약고 중동, 과연 변할 것인가?


  현재 중동은 세계의 화약고나 다름없다. 예멘 내전, 시리아 내전, 트럼프의 예루살렘 수도 인정 발언 등의 정치적 문제뿐만 아니라 송유관, 원유 등 경제적 문제가 공존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중동지역은 협력 또는 전쟁을 통해, 또는 서방세계와의 협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왔다. 특히 사우디 같은 경우, 미국의 오랜 우방국가로서 중동 이슬람 세계의 지도국 역할을 맡고 있었다.
  그러나 카슈끄지 사건에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역사상 최악의 은폐 시도”라며 질타했고,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은 “카슈끄지 살해사건은 중동지역의 안전을 훼손했다.”고 비판했다. 또한 불량국가로 규정한 이란을 포위하기 위해 사우디의 예멘 내전 개입을 용인해온 미국이 카슈끄지 사건을 계기로 미 의회내의 사우디 군사지원 반대의견이 쏟아져 나옴에 따라 예멘 내전의 평화 협상을 주문하고 나섰다. 게다가 사실상 시리아 내전이 러시아를 비롯한 시리아 정부군의 승리로 끝나가는듯 보이면서 중동의 지도국의 지위는 더 이상 사우디가 아닌 터키에게 넘어가는 것이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언론인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탄압한 사우디에 대해 국제의 반응은 싸늘하다. 당장 사우디의 최대 우방국가인 미국이 사건에 대해 규탄하고 나섰을 뿐 아니라, 유럽의회는 사우디에 무기 수출을 금지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지난달 27일 채택하기도 했다. 또한 세계의 글로벌 기업들의 수장들이 빈 살만 왕세자가 주최하는 사우디 투자행사에 불참하는 등 카슈끄지 사건의 여파는 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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