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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 넘어 네팔의 룸비니로

기사승인 2019.12.09  00: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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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행기를 타거나 배를 타거나 아니면 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어보기는 했어도, 걸어서 국경을 넘기는 처음이다. 석가모니께서 큰 깨달음을 얻은 곳(보드가야), 첫 번째 설법을 한 곳(사르나스) 그리고 열반에 드신 곳(쿠시나가르)을 두루 살펴보았으니, 이제 석가모니께서 탄생한 룸비니에 갈 차례다. 룸비니는 오늘날 네팔의 땅이다. 네팔,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가 모두 넓게 보면 인도 문화권 안에 들어 있으니, 인도 문화가 복잡하기도 복잡하지만 넓기도 넓다.

 고락푸르에서 며칠 머물면서, 쿠시나가르에 다녀왔다. 그리고 다시 소나울리로 향했다. 석가모니의 열반지인 쿠시나가르를 여행하자면 고락푸르에서 머물러야 하지만, 인도와 네팔의 국경 마을인 소나울리로 가려해도 고락푸르를 지나야 한다. 그러니 고락푸르는 인도 네팔 여행의 베이스캠프 같은 곳이다. 소나울리는 고락푸르에서 북쪽으로 약 100km정도 떨어진 작은 마을이다. 하지만 국경지대인 만큼 특히 복잡할 뿐만 아니라 좀 위험하기도 한 곳이다.

룹비니의 마야데비 사원, 마야부인이 석가모니를 낳은 곳이라 전해지는데, 아쇼카 왕은 여기에(가운데) 석가의 탄생을 기리는 석주를 세웠다.

 소나울리에 도착하여, 여행객들을 따라 네팔 쪽이라고 여겨지는 방향으로 걸었다. 얼마쯤 걸었을까? ‘WELCOME TO NEPAL’이라고 쓰여 있는 커다란 콘크리트 기둥의 문까지 왔다. 경찰에게 인도출입국사무소가 어디 있는가를 물었더니, 이미 지나왔다고 한다. 다시 돌아가 ‘허름하기 이를 데 없는’ 출입국사무소에서 출국심사를 마치고, 그 문을 지나 ‘허름하기 이를 데 없는’ 네팔 출입국사무소로 갔다. 그 사이에는 아무런 제재도 없었다. 이렇게 허술한 국경이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네팔은 인도와 여러 가지 점에서 흡사했다. 아리안 족에 비해 몽골족이 좀 더 눈에 띈다는 점, 인도에 비해 조금은 더 깨끗하다는 점이 다를까? 의식주나 언어, 종교가 모두 인도와 비슷하다. 여기서도 ‘나마스테’가 통한다. 나마스테는 인도에서도 그렇지만 네팔에서도 사람들이 만나거나 헤어질 때 하는 인사다. 대개 합장을 하며 “나마스테” 하고 말하면 상대방도 어김없이 “나마스테” 하며 웃는다. 한국인인 내가 “나마스테” 하면 신기한 듯이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웃는다.

 나마스테는 상대방이 믿는 신에 대한 경배를 의미한다. 인도 사람들은 같은 힌두교도라 하더라도 사람마다 믿는 신이 천차만별이라고 한다. 나마스테에는, 그 복잡다단한 인도의 종교 문화 속에서, 그들이 서로 어우러져 살아가기 위해 찾아낸 삶의 지혜가 담겨있다. 그것은 자기 뜻을 강요하지 않고 상대방을 있는 그 자체로 인정하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에서도 종교적 다툼이 사라지지 않는 것을 보면, 인간은 필시 수수께끼의 존재임에 틀림없다. 종교를 넘어 인도 통일을 꿈꾸던, 힌두교도 간디가 같은 힌두교도의 손에 암살되었다. 개선의 바람은 어디로부터 불어오는가?

 룸비니에는 불교의 성지답게 거대한 직사각형 공원 형태의 사원이 조성되어 있다. 세로로 길게 뻗은 수로는 작은 나룻배들이 다닐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 수로 양 옆 숲속에는 세계 각국의 사찰들이 들어서 있다. 그리고 수로를 따라 끝까지 가면, 마야부인이 석가모니를 낳았다는 마야데비 사원이 나온다. 석가모니가 네팔 지역에서 태어났는가 아닌가는 오랫동안 논란거리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1896년에 독일의 고고학자 알로이스 안톤 퓌러가 여기에서 아소카왕 석주를 발견하여, 여기가 석가모니의 탄생지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이 사원을 포함한 룸비니 지역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되어 있다.

포카라 사랑곳, 세계 각국의 여행객들이 구름이 걷히기를 바라며 안나푸르나를 바라보고 있다.

 룸비니를 떠나 안나푸르나의 전경을 볼 수 있는 포카라에서 며칠 쉬었다. 그리고 네팔의 고도(古都) 카트만두의 유적지를 두루 살펴보고, 에베레스트를 볼 수 있다는 나가르코트로 갔다.

 카트만두 일대는 그 자체가 눈부신 보물이었다. 하지만 2015년 대지진으로 인하여, 유적지 곳곳이 붕괴된 것을 보니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안나푸르나는 정상부근만 구름에 덮여 있어 신비하게 보이기도 했으나, 에베레스트는 끝내 제 몸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영혼을 맑게 씻어내는 바람만은 더할 나위 없이 사원했다. 호텔에서 아쉬움을 호소했더니, 주인이 “몬-수-운!”하고 말하며 웃었다. 몬순 기후라 여름에는 에베레스트를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합장을 하며 허허롭게 “나마스테!” 하며 웃음을 지었다.

이승준 인문자연학부 교수  

<저작권자 © 항공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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