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는, 네 시간 반가량을 달려, 오후 네 시가 되어서야 인도 비하르의 가야역에 도착했다. 오전 10시 5분에 출발하기로 예정되었던 기차를 12시가 넘어서야 겨우 탈 수 있었다. 인도의 기차 시간은 그야말로 고무줄이다. 한두 시간 연착은 예사로운 일이고, 기차역에 도착해 보면 출발 시간이 예약 시간과 다른 경우로 있으니, 그 시간에 가야에 도착한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여겨야할 판이다. 가야에서 약 15km 떨어진 작은 도시 보드가야에 가기 위해 가야에 왔다. 보드가야에는 마하보디사원이 있다. 예약해 둔 호텔에서 하루를 머물고 다음날 아침 일찍 툭툭이를 타고 보드가야로 향했다. 툭툭이는 오토바이를 개조해 만든 삼륜차인데, 동남아시아와 인도 일대의 주요 대중 교통수단이다.

 보드가야에 있는 마하보디사원은 불교의 4대 성지 중 하나이다. 이 사원의 중앙에는 높이 52m의 9층 석탑이 우뚝 솟아 있다. 짙은 회색의 길쭉한 피라미드형 석탑은 웅장하면서도 엄격한 멋이 있었다. 석탑 1층 안에는 석가모니의 불상이 모셔져 있다. 이 탑 뒤에는 보리수 한 그루가 드넓게 가지를 뻗고 웅자(雄姿)를 드러내고 있다. 이보다 키 큰 나무는 얼마든지 본 적이 있지만, 옆으로 더 넓게 가지를 뻗은 나무는 본적이 없다고 할 정도로, 나무가 거대하다. 우주를 삼킬 듯 웅숭깊어 신성한 느낌 절로 든다. 바로 이 보리수 아래에서 2500여 년 전 석가모니가 7년 고행 끝에 큰 깨달음을 얻었다. 석가모니가 열반에든 지 260여년이 지나서 아소카 왕이 이 나무를 중심으로 사원을 조성하고 탑을 세웠다.

 석가모니는 본래 히말라야 산맥 자락 카필라국의 왕자였다. 그는 29세에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출가한다. 그는 고행에 전념하지만 깨달음은 없었다. 6년간의 고행을 중단하고, 이 보리수 아래에서 사색에 잠겨 큰 깨달음을 얻는다. 후대에 전하는 그 깨달음 내용은 이러하다. 인생은 고통이며(一切皆苦), 모든 것은 변하니(諸行無常), 자아 또한 변하고 그 실체가 없다.(諸法無我) 집착을 버려야 도에 이르니,(苦集滅道) 그로 인하여 고통과 번뇌의 불을 끄고, 마음은 자유자재 상태를 유지하는 해탈에 이른다.(涅槃寂靜)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貪瞋癡)을 없애야하며, 바로 보고, 바로 생각하고 말하고, 바로 행동하고, 생명을 소중히 하며, 꾸준히 마음을 닦고, 바로 사색하고, 마음가짐을 바로 하는 것(八正道)이 해탈에 이르는 길이다.

이 보리수 아래에서 석가모니가 큰 깨달음을 얻었다.

 보리수 주위에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모여든 승려들이, 더러는 좌선을 하고 더러는 불경을 외고 또 더러는 졸기도 한다. 탑돌이를 하듯이 그 주위를 맴도는 이도 있다. 무슬림이 보이기도 하고, 수녀의 모습도 눈에 뜨인다. 수많은 인도인들이 보리수에 꽃을 뿌리며 예를 올리고 있었다. 산화공덕(散花功德)의 의미를 인도에 와서야 실감하게 되었다. 사실 불교 사원보다도 힌두교 사원에서 더 많은 꽃이 뿌려지고 있었다. 아마도 산화공덕은 불교보다 더 깊은 연원을 지니고 있는 종교 의례인 모양이다. 꽃이야말로 이 우주에 존재하는 것들의 정수(精髓)의 상징이 아닌가? 그러니 성스러운 것에 대한 외경(畏敬)의 표시라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관광객으로 보이는 서양 사람들도 꽃을 뿌리고 예를 표한다. 모두들 숙연하다.

마하보디사원의 석탑

 나는 나무에서 좀 떨어진 보리수 그늘에 자리하고 앉았다. 석가의 인생 여정을 좇아 그 깨달음의 끝자락이나마 더듬어 볼 요량으로 집을 떠났지만, 이번 여행에서 특히 보고 싶었던 것이 바로 이 보리수였다. 어찌 보면 여기가 이번 여행의 궁극적인 목적지인 셈이다. 그런데 도대체 붓다가 진짜 깨달은 것은 무엇일까? 후대에 전하는 교리가 그 실체일까? 나는 가만히 생각에 젖어들었다. 붓다는 정말 생로병사의 번뇌와 인연의 사슬에서 벗어났을까? 업(業)을 소멸하고 윤회의 굴레에서 해탈했을까? 이 도저한 삶의 허무에서 벗어나 구족(具足)의 정토(淨土)에 들어 자유자재의 마음을 지니게 되었을까? 이러한 생각 또한 그저 허무맹랑한 집착인가? 그러다가 그냥 누워버렸다.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바람은 시원했다. 그러다가 그 보리수 그늘 아래에서 문득 잠이 들고 말았다.

 얼마나 잤을까? 총을 든 한 군인인 나를 깨웠다. 여기는 성스러운 곳이니 누워서 자면 안 된다고 말했다. 부처님은 내가 잠자는 것에 대해 별로 개의치 않으실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나는 아무 대꾸 없이 순순히 일어났다. 나는 사원을 다시 한 번 둘러보고 출구로 사원을 빠져 나왔다. 드넓게 가지를 펼치고 웅숭깊게 서있는 그 보리수의 그림자가 숙소에 돌아와서도 머리에서 어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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