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진제 편집국장

 우리는 왜 누군가에게 겁을 주거나 위협을 가하고자 할 때, 다른 곳도 아닌 ‘뒤통수’를 조심하라고 하는 걸까? 이에 대해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나는 며칠간 ‘뒤통수’만을 생각하게 되었다. 마치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는 명령을 받으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코끼리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처럼 말이다. 어쨌든,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이에 대한 답은 명쾌했다. 뒤통수에는 눈이 달려있지 않기에 그 누가 내 뒤통수를 치려고 달려와도 이를 막을 새조차 없이 당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내가 느끼는 모멸감과 자괴감은 다른 곳을 – 뺨은 제외하자. 특수한 케이스니까. - 맞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 나도 모른 채 ‘당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고, 그렇기에 그 충격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이거 완전 뒤통수 맞았네’라는 표현도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생각할 수 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때에, 혹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람에게 배신을 당했을 때, 우린 뒤통수를 맞았다고 한다. ‘설마 지금 그러겠어’라거나 ‘설마 그 사람이 그런 짓을 하겠어’와 같은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누군가 우리의 뒤통수를 치는 것이다.

 필자의 경험을 비추어 언제 가장 세게 뒤통수를 맞았는가 생각해보면, 나의 특정한 말이나 행동을 비난(혹은 비판)했던 이가 그 행동을 똑같이 하면서 마치 그것을 정당한 행동으로 여겼을 때인 듯하다. 구체적인 상황을 낱낱이 밝히기는 어려우니, 일상 속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상황으로 예시를 들어보자. 중국어보다 일본어를 더 공부하고 싶은 A가 있다. A는 자신에게는 중국어보다 일본어가 더 맞는 것 같고, 일본 여행도 자주 다닌다는 이유로 일본어를 배우려 한다. 그런데 이를 지켜보던 B가 ‘일본 여행을 몇 번이나 간다고 일본어를 배우느냐’, ‘요즘은 일본어보다 중국어가 대세다’라며 A의 태도를 이해가 안 간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A는 B가 일본어를 공부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이를 어이없게 여긴 A가 B를 지적하자, B는 ‘그때는 중국어가 대세였는데, 지금은 아니다’라고, ‘일본어가 재밌어서 공부하는 건데 왜 뭐라고 하느냐’라며 오히려 화를 낸다. 같은 행동이라 할지라도, 타인의 행동은 자신만의 잣대로 평가하는 반면, 자신의 행동은 그 잣대를 쏙 빼놓고 정당화하는 것이다. 거의 한 문단에 걸쳐 예시를 들며 장황하게 설명한 이 현상을, 우리는 ‘내로남불’이라 부른다.

 내로남불.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다른 누군가에게 잊지 못할 아픔을 주는 행동도, 내가 하면 마치 영화나 드라마 속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로 포장하면서, 남이 그런 행동을 하는 건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손가락질 하는 그 행태를 표현하는 단어이다. 내가 하는 건 되고, 남이 하는 건 안 된다는 사고방식이 바로 내로남불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러한 모습에 화가 나는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뒤통수’를 맞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의 행동을 비판하며 정죄했던 그가 뻔뻔하게 그 행동을 똑같이 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의 그 배신감. 그 감정이 화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분노는 그 사람이 자신의 행동을 이런저런 이유를 갖다 붙이며 정당화할 때 폭발한다. ‘나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 ‘그땐 하면 안됐는데 지금은 괜찮다’, 심지어는, ‘억울하면 너도 하든가’와 같은 말들은 우리를 더욱 분노케 한다.

 요즘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할 사람들이 ‘내로남불’의 태도로 ‘뒤통수’를 때리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그리고 그를 믿었던 사람들은 그 충격 속에서 헤어 나오질 못하고 있다. 인간은 완벽할 수 없다.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갈 수도 없다. 이건 그들만이 아닌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명제이다. 그러나 우리는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비도덕적인, 비양심적인 삶을 살기보단 도덕적이고 양심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의 잘못을 권면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권면의 핵심은 ‘정의로움’에 있다. 남에게 적용했던 그 잣대를 나에게는 더욱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 내가 보기에 옳지 않은 행동을 내가 하지 않도록 더욱 철저히 감시하는 것. 그리고 서로가 서로의 모범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추구해야 하는, 우리 사회가 ‘보다 나은 사회’가 되기 위해 추구해야 할 가치이다. 내로남불이 만연한 사회가 되지 않기를 소망하며, 얼얼해진 뒤통수를 쓰다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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