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4월, 마곡사(麻谷寺)에 다녀왔다. 산사 입구에 들어서니 봄바람이 산뜻하다. 무성한 나무에는 새잎이 돋기 시작한다. 봄 내음 가득한 기운이 온몸을 감싼다. 마곡천 물길을 끼고 20분쯤 걸어가니, 마곡천 건너편으로 넓게 펼쳐진 마곡사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마치 산을 병풍 삼아 물위에 떠있는 듯하다. 영산전을 감상하고, 극락교를 건너서, 해탈문과 천왕문을 지나니, 대광보전과 대웅보전이 묘한 구도로 우뚝 서서 중생을 맞이한다. 좋은 절이다. 절만 좋은 것이 아니라 물도 좋고 산도 좋고, 절에 이르는 길이 모두 좋다. 산사(山寺)의 매력이다. 옛부터 춘마곡(春麻谷) 추갑사(秋甲寺)라* 하더니, 이제 와 보니 그 이유를 알 듯도 하다.

대광보전(아래)과 대웅보전(위)이 마치 한 건물처럼 층을 이루고 있다.

 물과 산의 형세가 태극 모양이라 하여, 『정감록』 같은 비기(祕記)에는 전란도 피해 간다는 십승지지(十勝之地)로 전한다. 그래서 그랬을까? 마곡사는, 김구 선생이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일본인 장교 쓰치다를 죽이고 인천형무소에 갇혀 있다가 탈옥해 은거했던 절이다. 생육신의 한 사람인 매월당 김시습도 이 절에 은거한 적이 있다. 김시습이 이 절에 머물 때, 세조가 그를 만나기 위해 한양에서 연(輦, 임금이 타는 가마)을 타고 이 절에 왔다. 하지만 세조가 도착했을 때, 김시습은 세조를 피해 이미 절을 떠난 뒤였기에, 세조는 가마를 두고 소를 타고 한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 절의 영산전(靈山殿) 현판을 그때 세조가 썼고, 지금도 이 절에는 세조의 가마가 보존되어 있다.

 이렇게 마곡사는 유서 깊은 산사다. 이러한 마곡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2018년 6월 30일 마곡사를 포함한 양산 통도사,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보은 법주사, 순천 선암사, 해남 대흥사 등 7개의 절이 ‘한국의 산사’(Sansa, Buddhist Mountain Monasteries in Korea)로 우리나라에서 13번째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것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인정받으려면,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지녀야하는데, 우리 산사는 ‘7~9세기 창건 이후 현재까지의 지속성, 한국 불교의 깊은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써 우리나라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북한의 것 2개를 합하여 모두 14개가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절들이 그냥 사찰이 아니라 ‘산사(山寺)’라는 점이다. 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여행하다보면, 유서 깊은 많은 사찰이 도시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사찰은 대부분 산속에 자리 잡고 있다. 중국이나 일본에, 유명한 산사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마찬가지로 도시에 절이 많다. 특히 일본의 교토에 가 보면, 대로 옆에 큰 절들이 들어서 있고, 작은 절들이 골목마다 숨어 있다. 도시 여기저기에서 우뚝 솟은 목조 석탑들이 눈에 뜨인다. 신라 반가사유상과 유사한 목조반가사유상을 보존하고 있는 광륭사(廣隆寺) 앞에는 트램이 지나간다.

 우리에게 본래부터 산 속 깊은 곳에 사찰을 짓는 전통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조선왕조가 유교를 국가 이념으로 채택하면서 숭유억불정책을 펴게 되고, 그로 인하여 도시 사찰의 대부분이 사라지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의 산사는, 산속에 있음으로 해서, 역사적 질곡을 겪으면서도 오늘날까지 남을 수 있었고, 그 원형을 유지할 수 있었으며, 그리하여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된 셈이다. 산속에 있어서 우리 산사는 운치 있고, 고즈넉하며, 그윽한 맛이 우러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하면서 그 나라의 절에 가면, 흔히들 ‘절 맛이 안 난다’고들 하는데, 거기에는 바로 그러한 맛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절은 곧 산사다.

 최근 조선시대의 사설교육기관인 서원(書院)이 ‘한국의 서원’(Seowon, Korean Neo-Confucian Academies)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될 것이 확실시 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번에 선정된 서원으로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영주 소수서원을 비롯한 경주 옥산서원, 안동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달성 도동서원, 함양 남계서원, 정읍 무성서원, 장성 필암서원, 논산 돈암서원 등 9곳이다. 서원이 조선의 건축물로서, 성리학의 사회적 전파를 이끌고 정형성을 갖춘 건축문화를 이룩했다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보았다. 이 글이 활자화되었을 때, ‘한국의 서원’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있기를 바란다.

 

* 춘마곡(春麻谷) 추갑사(秋甲寺): 봄에는 마곡사, 가을에는 갑사가 아름답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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