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1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5.18 민주화운동 39년 만에 피고인 신분으로 광주지방법원에 섰다. 전 씨는 지난 2017년 4월 펴낸 회고록에서 5.18 당시 헬기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를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한 혐의(사자명예훼손)로 불구속 기소됐다. 그러나 전 씨 측은 법정에서 “과거 국가 기관 기록과 검찰 조사를 토대로 회고록을 쓴 것”이라며 “헬기 사격설의 진실이 아직 확인된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전 씨가 공소 사실을 전면 부인함에 따라 앞으로 치열한 법정 공방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논란의 시작, <전두환 회고록>

 사건의 발단은 전 씨의 회고록이 발간되었던 지난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7년 4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이후 정국이 어수선한 시기에 전 씨는 2천 페이지 분량의 세 권짜리 <전두환 회고록>을 발간했다. 전 씨는 회고록 1권에서 5.18을 ‘폭동’으로 규정하고 자신을 ‘광주사태 치유를 위한 씻김굿의 제물’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광주 시민을 향해 총을 겨누지 않았다’, ‘1980년 5월 21일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 직전 시위대의 장갑차에 치여 계엄군이 사망했다’는 주장을 책에 담기도 했다. 이에 5월 3단체(유족회‧부상자회‧구속부상자회)가 이와 같은 40건의 허위사실이 5월 단체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며 출판 및 배포 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이후 법원이 이 주장을 받아들이며 출판과 배포가 금지된 것이다. 하지만 논란은 이로 종결되지 않았다. 전 씨가 회고록에서 ‘헬기사격은 없었다’고 주장하면서 조 신부를 ‘가면을 쓴 사탄’,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로 표현한 것이다. 이에 조 신부의 유족 측이 전 씨를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형사 고발했고, 광주지방법원이 재판을 담당하며 전 씨는 법정에 서게 되었다.

 

75분간의 법정공방, 혐의는 전면 부인

 전 씨의 재판 당일은 온 국민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오전 8시 30분 경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나온 그는 아무런 말없이 차에 올라 타 낮 12시 35분 경 광주지법 법정동 앞에 도착했다. 그가 차에서 내리자 “광주시민들에게 사과하겠느냐”, “5.18 당시 발포를 부인하느냐” 등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지만 그는 “왜 이래”라는 한 마디를 제외하고는 별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재판은 검찰 측의 공소 사실 설명과 피고인 측의 혐의 인정 여부, 증거‧증인 채택 순으로 75분 간 이어졌다. 검찰은 공소사실과 관련해 1997년 대법원의 확정판결과 헬기사격을 목격했다는 취지의 진술, 이를 입증하는 계엄사 관계자 등의 진술을 토대로 혐의가 있다고 판단했다. 반면 전 씨 측 변호인은 혐의에 대해 전면 부인했다. 변호인은 “전 씨의 회고록을 읽고 불쾌한 감정을 가졌다거나 하는 것만으로는 명예훼손으로 볼 수 없다.”라며 “광주에서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훼손되었다고 볼 수 없다.”라고 반박했다. 이어 공소 사실에 대해서는 “조비오 신부가 1980년 5월 2일 헬기사격을 주장했지만, 헬기 조종사들은 ‘신부님이 잘못 본 것’이라고 말했다.”라며 “1995년 서울지검은 관련 자료를 확인한 결과 조비오 신부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확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라고 설명했다.

 

5.18 헬기사격, 계속되는 증언

 그러나 전 씨의 이와 같은 혐의 부인과는 달리 조 신부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광주시민의 증언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광주 시민 정선덕 씨는 지난달 15일 KBS와의 인터뷰에서 “1980년 5월 21일 오후, 옛 전남도청 앞에서 계엄군이 쏜 총탄에 남편이 부상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향하던 중 계엄군 헬기로부터 세 차례 (위협) 사격을 당했다.”라고 밝혔다. 정 씨는 “전쟁 중에도 헌혈차는 사격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나 안심하고 차에 올라탔는데 헬기에서 지프차 방향으로 ‘드드드드 씨웅’하는 사격소리와 함께 반짝반짝하는 불빛이 보였다.”라며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정 씨의 이러한 증언은 5.18 헬기 사격 국방부 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와 조 신부의 헬기 사격 증언과도 일치한다.

 앞선 지난달 12일에는 1980년 5월 당시 시민군으로 활동한 김영이 씨가 “5.18 때 계엄군 총격에 사상당한 시민 수습과 헌혈을 도왔다.”라며 “1980년 5월 21일 오후 1시에서 2시 사이, 광주 금남로 전일빌딩 옥상으로부터 4~5m 상공에 헬기 2대가 떠 있었고, 이 중 1대가 ‘ㄴ’자로 선회 비행하면서 맞은편 무등맨션 건물을 향해 사격했다.”라고 증언한 바 있다. 이렇듯 당시 헬기사격과 관련된 여러 증언이 나오며 전 씨의 혐의 부인은 설득력과 힘을 잃어가고 있다.

 

 형사 사건은 선거 사건과 달리 선고 기한이 정해져있지 않고 전 씨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기 때문에 현재로선 1심 선고 시기를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전 씨가 과거 수차례 재판 연기 신청을 했고, 공판에 두 차례 불출석한 점을 고려해 전 씨 측이 무리하게 시간을 끌지 않도록 재판을 이끌 전망이다. 앞으로 진행될 재판과 재판부의 판단에 광주 시민을 비롯한 온 국민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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