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진제 편집국장

 “며칠 전에 취직 시험을 봤는데, 그 때 ‘원고지 4매 이내로 자기 자신에 관해 설명하시오’ 라는 문제가 나왔습니다. 저는 도저히 원고지 4매로 저 자신에 대해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그건 불가능하지 않나요. 혹시 그런 문제를 받는다면, 무라카미씨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프로 작가는 그런 글도 술술 쓰시나요?”

 어느 날, 세계적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한 통의 메일이 온다. 여느 취업 준비생과 다를 바 없는 한 독자가 이른바 ‘자기소개서’를 쓰는 데 어려움을 겪고 무라카미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다. 이에 대한 무라카미의 대답은 사뭇 진지하지만, 한편으로는 웃음을 짓게 만든다. “굴튀김에 대해 써보는 건 어떨까요.” 이게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한편으로는 무책임한 말처럼 들리지만, 또 한편으로는 거장의 이 말에 담긴 뜻이 궁금하기도 하다. 피식하고 웃음이 새어나올 것도 같다. 그러나 무라카미의 답은 진지하게 이어진다. “당신이 굴튀김에 관한 글을 쓰면, 당신과 굴튀김의 상관관계나 거리감이 자동적으로 표현되기 마련입니다. 다시 말해, 끝까지 파고들면 당신 자신에 관해 쓰는 일이기도 합니다.” 무라카미는 이를 자신의 ‘굴튀김 이론’이라 부른다. 그리고 이어지는 글의 초점은 굴튀김에서 무라카미 그 자신에게로 돌아가며 마무리된다. 굴튀김에 관한 이 짧은 일화는 그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가는지, 그리고 글쓰기를 업으로 삼은 그가 글쓰기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또한 보여준다.

 우리 삶은 ‘글’과 떼려야 뗄 수 없다. 여러분이 지금 읽고 있는 것도 ‘글’이고, 손 안에 스마트폰만 들여다보아도 무수히 많은 ‘글’들이 보인다. 또 우리는 글을 읽을 뿐만 아니라 쓰기도 한다. 친구에게 보내는 짧은 한 줄짜리 메시지부터 졸업을 위한 논문과 취업을 위한 자기소개서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첫 문장을 쓸 때부터 눈앞이 캄캄해진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의 경우에도, 처음에 저 인용구를 넣는 게 더 나을지, 아니면 무라카미에게 한 통의 메일이 도착했다는 사실을 먼저 적을지 무수히 많은 고민을 했다. 아니, 애초에 무엇을 주제로 글을 써야 할지 정하려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일단 첫 문장을 쓰고 나면 그 뒤로 이어지는 내용은 나름 술술 쓰이지만, 첫 시작을 위해 고민하는 시간이 힘든 건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렇게 공들여 쓴 글이 누군가에게 평가를 받는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은 사라지고 만다. 며칠에 걸쳐 쓰고 고쳤던 자기소개서가 거절당하는 그 순간에 드는 괴로움은 설명하지 않아도 무슨 기분인지 알 것이다. 그렇기에 어쩌면 우리는 글쓰기 그 자체를 즐거움의 과정이 아닌 고통과 고난의 과정으로 여기게 된다. 혹여나 글 안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담아야 한다면, 글에 대한 평가와 더불어 나라는 사람에 대한 평가도 받게 되어 더 큰 부담을 짊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무라카미는 글을 써내려가는 그 과정을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자신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을 주제로 한 문장 한 문장을 이어나가다보면, 결국 그 문장들은 하나로 연결되어 나라는 사람을 그 어떠한 장신구보다 빛내줄 거라는 의미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쓰기에 부담도 적을뿐더러, 평가를 받아도 그만 안 받아도 그만이라고 생각한다면 글쓰기는 그리 어려운 일로 여겨지지도 않을 것이고. 그리고 필자는 거장의 조언에 한 가지를 덧붙이고 싶다. 시간과 기회를 놓치지 말고, 그 모든 순간을 조금씩 모으라 말하고 싶다. 이런 사소한 글쓰기의 시간은 결국 쌓이고 쌓여 더욱 반짝이는 장신구가 될 것이며 글쓰기 그 자체를 즐기게 되는 경지로 당신을 이끌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올해 신문사의 편집국장을 맡게 되며 매 호마다 반 면의 공간을 채우게 되었다. <행주산성>이라는 이름의 이 공간은, 기사 속 사실들이 아닌 나라는 사람의 목소리로 채워진다. 누군가는 일간지 속 칼럼과 같이 정치권에 대한 따끔한 비판을 원하기도 할 테고, 또 다른 누군가는 항공대신문의 편집국장이라는 직책에 걸맞은, 소위 ‘글발 좀 날리는’ 글을 기대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공간을 나만의 ‘굴튀김’들로 가득 채우고 싶다. 하루를 살아가며 내 인생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게 무엇인지. 때로는 나를 끝없는 고난 속으로 밀어 넣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그 가운데서도 이 글을 읽고 있을 당신의 마음을 두드릴 그 무언가. 그 무언가를 써내려가며 이 공간을 채우고 싶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에게도 나와 함께 노트북을 열고 키보드를 두드려 보길 권한다. 쓰고 싶지 않음에도 의무감에, 혹은 억지로 쓰는 글이 아닌, 진정 내가 쓰고 싶은 주제에 대하여 하고 싶은 말을 글로 풀어내보기를 권한다. 그 시간은 쌓이고 쌓여 결국, 그리고 언젠가 뜨거운 굴튀김을 맥주와 함께 목구멍으로 넘기는 그 순간처럼 행복하고 짜릿한 기쁨을 선사해 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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