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뉴욕까지의 총 비행 시간은 약 14시간. 높은 고도를 빠른 속도로 비행하는 그 오랜 시간 동안 항공기에서는 수많은 기계 시스템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쉼 없이 돌아간다. 그리고 우리는 이를 통해 조절되는 압력과 온도, 공기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편안히 비행을 즐길 수 있다. 이렇듯 항공기가 지상에 있을 때나 비행 중일 때, 조종실과 객실 내 공기의 온도와 압력을 조절하고 공기를 순환시켜 쾌적한 환경을 만드는 시스템을 ‘공조 시스템’이라 부른다. 결국 항공기에는 ‘사람’이 탑승해야 하기에 반드시 필요한 공조 시스템에 대해 알아보자.

▲ 항공기 공조 시스템 전반 (출처: Aircraft Systems)

 

기내를 적절한 기압으로, 여압 시스템

 가장 대표적으로 항공기 내 공조 시스템의 한 축을 담당하는 것은 바로 ‘여압 시스템’이다. ‘여압(與壓)’이란 기압이 낮은 고도를 비행하는 항공기 따위에서 꽉 막혀 기체가 통하지 않는 기내에 공기의 압력을 높여 지상에 가까운 기압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대부분의 항공기, 특히 여객기의 경우 기내는 여압을 실시하고 있거나 이를 가능케 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항공기는 공기 밀도가 낮아 공기의 저항을 적게 받고, 이에 따라 높은 연비의 비행을 할 수 있기에 기압이 낮은 고고도를 비행하게 된다. 만일 이러한 환경에서 기압을 조절하지 않고 비행한다면, 산소의 양이 적은 상태가 되어 짧은 시간에 의식을 잃을 수도 있다. 즉, 고고도에서의 장시간 비행을 위해선 여압 시스템이 필수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여압 시스템은 기내에 공급하는 공기의 양을 조절하며 작동된다. 이 때 기내에 제공되는 공기는 엔진의 전방 압축기에서 추출한 공기를 활용한다. 엔진은 바깥의 공기를 빨아들이고, 들어온 공기는 전방 압축기를 거치면서 약 200도의 고온‧고압 상태가 된다. 이 과정에서 공기는 자연스레 멸균 상태가 되는데, 이를 ‘블리드 에어(Bleed Air)’라고 부른다. 이렇게 만들어진 블리드 에어는 고온‧고압의 상태이기에 오존 정화장치와 공기냉각장치(Cooling Pack)로 옮겨져 냉각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일련의 과정을 거쳐 기내로 유입되는 공기는 사람이 편하게 호흡할 수 있을 정도의 기압을 형성한다. 역으로 기압을 내릴 필요가 있을 때에는 동체 후면에 위치한 공기배출밸브를 통해 실내 공기를 배출함으로써 객실 내 압력을 조절한다.

 

깨끗한 공기를 기내로, 환기 시스템

 여압 시스템으로 사람은 높은 고도에서도 편안하게 호흡을 할 수 있지만, 기내와 같이 폐쇄적인 공간에서 오랜 시간 환기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승객들에게 큰 불편함을 주게 된다. 이를 위해 항공기는 환기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항공기는 환기 시스템을 통해 매 2~3분마다 공기를 순환시키고, 화장실과 갤리에도 따로 배출구를 마련해 불쾌한 공기도 즉시 제거한다.

 환기 시스템에서 사용되는 공기도 앞서 설명한 블리드 에어다. 엔진 압축기를 통해 유입된 블리드 에어는 멸균 상태이기에 냉각 과정만 거친다면 사람이 호흡하는 데 사용되어도 큰 무리가 없다. 이 공기는 공기 중 바이러스의 99.9% 이상을 여과하는 헤파(HEPA)필터와 천장 위의 덕트(duct, 공기나 기타 유체가 흐르는 통로 및 구조물)를 거쳐 재순환 팬(Recirculation fan)에 이른다. 이후 기존 기내 공기와 50대 50의 비율로 혼합되어 기내 위쪽 선반의 흡입구로 유입되고 기내 하단부의 배출구로 배출되는 과정을 반복한다.

 항공사들은 자사의 항공기에 첨단 공기 순환 시스템을 장착해 비행기 내 바이러스 감염 발생을 최소화하기도 한다. 실제로 대한항공의 경우, 지난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환자가 3년 만에 발생하며 감염 우려가 이어졌을 당시, “항공기 내는 메르스 안전지역”이라며 설명 자료를 내기도 했다. 대한항공은 자료를 통해 “대한항공의 모든 항공기는 첨단 공기 순환 시스템을 장착하고 있다.”라며 “특히 객실 내 공기는 수평으로 흐르지 않고 각 구역 별로 수직으로 흘러 바이러스가 공중에 떠다닐 수 없다.”고 강조했다.

▲ 항공기 객실 내 환기가 이루어지는 원리 (출처: ENGYS)

 

적재적소에 알맞은 온도로, 온도조절 시스템

 그밖에도 공조 시스템은 기내 온도를 조절하는 역할도 한다. 고온의 블리드 에어와 공기냉각 시스템을 사용해 장소에 따라 알맞은 온도를 만드는 것이다. 객실과 조종실, 화물칸은 너무 뜨겁거나 차가운 공기가 유입되면 안 되기에 사람이 활동하기에 적절한 온도로 조절한다. 그러나 뜨거운 공기나 차가운 공기만 필요한 곳도 있다. 바로 항공기 조종 계통과 엔진 흡입구, 조종실 전방창 등과 같은 곳이다. 고도 10,000m(약 33,000ft) 정도가 되면 항공기의 외부의 기온은 영하 50~55도에 이른다. 기체에는 수분이 없기 때문에 얼음이 형성될 염려는 없지만, 수분을 가득 머금고 있는 구름을 지나게 되면 날개와 엔진, 전방창 등에 얼음이 붙게 된다. 특히 날개에 얼음이 생길 경우, 날개 표면을 흐르는 기류가 흐트러지며 양력이 줄어들고, 심할 경우 실속에 빠질 위험도 존재한다. 고온의 블리드 에어는 바로 이런 상황에서 제‧방빙을 위해 사용된다.

 반대로 항공기 시스템이 작동하며 열이 발생하는 곳은 차가운 공기를 주입해 온도를 낮출 필요가 있다. 차가운 공기를 만드는 역할은 공기냉각장치 시스템이 담당한다. 공기냉각장치는 덕트를 통해 유입된 블리드 에어와 비행 중 기내로 유입되는 차가운 공기를 열 교환기에서 혼합한다. 이후 터빈을 통과시켜 열을 빼앗아 공기를 더욱 차갑게 만든다. 이렇듯 항공기 내에서는 사람을 위한 공기와 항공기 기체 및 각종 기계 장치를 위한 공기를 적절한 온도로 조절해 적재적소에 공급한다.

 

 이렇듯 항공기 내에서는 다양한 시스템이 하나로 어우러져 승객들의 편안한 비행을 위해 작동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움직이고 있을 여러 시스템에 대해 알아보는 것도 비행의 색다른 즐거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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